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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할 때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신학교 교수님들이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가난하게 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들의 학문적 배경을 보면 결코 가난하게 사실 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주 검소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번은 학기를 마치고 특별히 저를 아껴주신 목회학 교수이신 라이져 교수님을 찾아가서 한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조그마한 꽃병을 하나 선물해드렸습니다.
그것을 받아든 교수님이 너무 감격해 하면서 연신 “탱큐”를 연발하시면서 즉석에서 그 꽃병 이름을 “소망의 꽃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교수님은 당시 말기 암을 앓고 계셨기 때문에 그 꽃병 이름을 “소망의 꽃병”으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 자그마한 꽃병은 교수님이 이 땅에서 받은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라이져 교수님에 대한 기억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번은 평소에 보지 못한 양복을 입고 강의실로 들어 오셔서 아주 들뜬 음성으로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지난 주말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 감사했다. 아내와 함께 동네 거라지세일 하는 곳을 돌아보는 중에 내 몸에 꼭맞는 양복을 단돈 $5 에 살 수 있었다. 내가 미국 사람치고는 체구가 작기 때문에 내 몸에 맞는 옷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지난 주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옷을 살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우리 모두는 그 교수님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진심으로 축하해드렸습니다.
언제나 그 분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은 감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가신 분으로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몰아친 경제한파로 인해 다들 걱정 가운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일할 곳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매상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감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조차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감사의 기준을 나 자신에게 두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엄청난 것을 얻을 때만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을 둘 때 비로서 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단어입니다.
감사는 큰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감사는 멀리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정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남이 먼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전파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나로 부터 시작한 감사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인색한 마음이나 억지로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어두운 현실로 인해 불평과 불만이 품어내는 악취가 가득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인한 감사의 향기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세상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최 병걸목사님 감사에 대한 글 잘읽었답니다, 미국에서 생활뿐 아니라 지구촌 어디에서도 검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리집 가훈은 1.勿壞貪慾心 2.恒心親友愛 3.不變主信仰 세가지의 내용으로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家訓을 받아서 삶에 현장에서 적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항상 건강, 평안. 행복한 가정과 사역현장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특별히 누님을 비롯하여 가족 모두에게 안부전해 주세요. 일본에서 이응주 선교사 보내 드림